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지금 이 길이 맞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일상 속에서는 답을 찾기 어렵지만, 여행이라는 낯선 경험 속에서는 의외로 선명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이 글은 내가 여행 중에 겪은 내면의 변화, 그리고 그로 인해 삶의 방향이 바뀌게 된 과정을 담고 있다. 단순한 쉼 이상의 의미를 품은 여행은 결국 나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 주었다.
바쁘게 살아온 날들, 그리고 어느 날의 결심
사는 게 벅차다고 느꼈던 날이 있었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했고, 눈치 보지 않으려고 애썼고, 미래를 준비한다고 늘 바쁘게 살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몸은 움직이지만 마음은 멈춰 있었다. 반복되는 하루, 똑같은 사람들, 정해진 루틴 속에서 나는 점점 무기력해지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 정도면 잘 살고 있는 거야”라고 했지만, 내 안에서는 점점 큰 공허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때부터 문득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의문이 생겼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감정이었다. 직장, 가족, 관계 속에서의 나 말고, 진짜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삶을 원하는 사람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어느 날, 충동처럼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목적지는 라오스. 왜 하필 라오스였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다만, 그곳에서는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도 나 자신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출국 당일, 공항에 도착했을 때 느낀 해방감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물론 두려움도 있었다. 계획 없이 떠나는 건 처음이었고, 낯선 땅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 두려움 속에 희미한 기대감이 있었다. 어쩌면 이 여행이, 내 삶을 바꿔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 그렇게 나는 일상으로부터 도망치듯, 혹은 진짜 나를 찾기 위한 여정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
작은 만남, 조용한 풍경이 건넨 인생의 대답
라오스는 상상보다 더 조용하고 느린 곳이었다. 방비엥이라는 마을은 아침이면 물안개가 자욱했고, 해 질 무렵이면 강가에 앉아 하루를 정리하는 여행자들이 보였다. 처음 며칠은 그 느림이 낯설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불안해졌고, ‘이래도 괜찮은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그 불안은 차츰 편안함으로 바뀌었다. 누가 보지 않아도, 누가 평가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곳에서 나는 진짜 나를 마주했다. 강가에서 마주한 일출은 평생 기억에 남을 장면이다. 해가 떠오르며 산 위로 퍼지는 붉은빛, 그걸 조용히 바라보던 사람들의 숨죽인 표정, 그리고 그 풍경 속에 녹아든 나. 나는 그 순간 눈물이 흘렀다. 이유는 없었다. 다만, 내 안에서 뭔가 오랜 시간 꽁꽁 묶여 있던 것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아무 말 없이 바라본 그 아침 해가 내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여행 중 만난 사람들도 잊을 수 없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웃으며 대화를 시도하던 시장 상인, 따뜻한 국수를 나눠주던 노부부, 길을 잃은 나를 안내해주던 낯선 외국인들. 그들은 아무 대가 없이 다가왔고, 그 진심이 나에게 큰 울림이 되었다. ‘세상은 생각보다 따뜻하구나’라는 걸 그제야 느꼈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 모여, 나는 나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도 생겼다. 여행은 화려하거나 거창하지 않았다. 오히려 평범했고 소소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과 경험은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었고, 들리지 않던 내 마음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힌트를 주었다.
삶을 바꾼 건 결국, 멀리 떠날 용기였다
여행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모든 것이 예전과 같아 보였다. 사무실 풍경도, 지하철의 붐빔도, 카페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익숙했다. 하지만 달라진 건 나였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고, 작은 일에도 크게 불안해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삶의 방향을 내가 결정하고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여행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선택할 용기’였다. 나는 회사에 사표를 냈고, 몇 달간 백수로 지냈다. 사람들은 걱정했고, 나도 불안했지만 그 불안마저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후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고, 지금은 프리랜서 작가로 살고 있다. 물론 여전히 쉽지 않은 날들이 많지만, 적어도 내가 선택한 삶을 살고 있다는 만족감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누군가는 말한다. 여행으로 인생이 바뀌냐고. 나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다만 여행 그 자체보다 중요한 건, 그 낯선 공간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려는 자세다. 그 질문이 시작되는 순간, 이미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 나는 다시 또 여행을 꿈꾼다. 단지 다른 나라가 아닌, 또 다른 나를 만나기 위한 여정으로.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혹시 삶의 갈림길에 서 있다면, 잠시 멈춰 떠나보길 바란다. 먼 곳이 아니어도 좋다. 익숙함에서 벗어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변화는 시작된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 역시 이렇게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여행이, 내 인생을 바꿨어요.”